아침부터 눈과 바람이 몰아쳐 온 길이며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밖에 한 발짝 나가보기 직전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차가운 눈쌀에 얼어붙고 말았다. 호되게 몸으로 겪고서야 아는 나와는 다르게 아침 일찍부터 자진해서 가게 앞에 나와 쓸고 치워도 쌓이는 눈발과 싸우는 존경스런 사람들을 여럿 보았는데, 쓸고 쓸어서 결국 도로로 투기하던 얘기는 또 다른 기회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전에 언뜻 보니 백년만의 폭설이었다고, 온갖 뉴스들이 전한다.
어떤 누군가는 버스로 출근하다가 내려서 한 시간 반을 걸어 도로 집으로 갔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후 늦게야 회사에 도착해서 두 시간쯤 일하다가 집으로 향했다고도 하고, 출근하자마자 퇴근할 걱정하는 사람과,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출근할 걱정을 하는 사람과, 만원 지하철에서 흉부 압박으로 누군가가 실려갔더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과, 도로에서 스키를 타거나 언덕으로 보드를 들고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과, 긴급 재택근무 연락을 받고 지하철에서 내리던 사람의 통화를 바로 옆에서 엿들었다며 부러워하는 사람과, 조기 퇴근 통보를 받은 회사를 부러워하던 사람, 그리고 아마도 철없이 마냥 눈이 좋을 사람, 들이 도처에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중간 정도로 나 자신과 타협을 보았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느즈막히 집에 가는 편이 차라리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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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셜록 홈즈에게 바쳐졌던 저 끝내주는 티비 쇼, 하우스 M.D.에게 헌정하는 작품임이 틀림없다. 가이 리치가 그러지 않겠다면 내가 대신 그러겠다. 안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에 그런 뉘앙스를 전해 듣고, 너무 중요한 사실을 듣고 보는 것 같아 재미를 잃거나 편견을 가질까 초반 후회했던 건 사실인데, 신경쓰지 않고 양쪽을 경배하면서 보면 좋겠다. 하우스 박사의 팬으로써 하는 말이다.

당신이 이 영화를 안 본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 예고편을 봤는데, 몸짱 홈즈가 웃통 벗고 격투기를 하더라, 왠 액션물이냐
  • 예고편을 봤는데, 홈즈에게 쇳덩어리가 굴러오더라, 왠 모험물이냐
  • 캐스팅을 봤는데, 주드 로가 겨우 조연이더라, 빈정상한다
  • 셜록 홈즈는 탐정물 아니냐, 케케묵어 싫다
  • 가이 리치는 폼만 잡고 한물 갔다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아니다.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9관 맨 앞자리는 스크린 크기에 비해 너무 가깝다. 적응되니 괜찮았다.

ps. 영화가 끝나고, 더운 공기에 지척대며 걸어와 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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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아져서 뭐라도 쓸 것 같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2010/01/04 23:44 2010/01/04 23:44

시작하자마자부터 아파서 혼났네. 그들은 다만 한 명분의 아픔만을 가졌으면 되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어찌 인생에서 사랑만이 타이밍이겠는가.

CGV 오리에서, 1월 30일 월요일 오전 8시 40분 조조, 8관 K열 11번
2006/01/30 08:40 2006/01/30 08:40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권상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대사가 안 되는 점이겠지만, 그 외에도 대사가 안 되는 배우는 많으니, 사실은 그가 응당 누려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런 배우의 대표 주자인 장동건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권상우란 배우가 내게 밉상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유지태도 이제 막 한 사람의 몫을 역할을 하게 된 배우인데, 그를 보고 연기가 무엇인지 배웠다고 말하는 권상우는 참 보기 그렇다. (죄송합니다 험담이 길었습니다)

야수의 광고 카피는 세상은 아직 그들을 길들이지 못했다인데, 맥락을 잘 짚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둘의 세상은 서로의 것과는 다른 것이어서, 그들이 결국 같은 처지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서로의 존재와 그 의미를 인정하게 됐지만 끝까지 그 사실을 이해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야수는 이 두 인물의 만남이라는 것이 함의하는 바 때문에 오히려 덜 주목받았던 영화가 아닐까, 또는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의외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CGV 야탑에서, 1월 21일 토요일 오전 11시 10분, 4관 F열 5번

시리즈 광고인 애니콜 슬림 슬라이드, 권상우편이 드디어 공개되었는데, 그는 여전히 그의 대명사인 톤과 발음으로, "보지 않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한다. 이게 또 썩 괜찮았어서, 그가 드디어 자신 특유의 발음을 잘 사용하는 법을 찾았는가, 하고 성급한 판단을 해 본다. 영화에선 아직이다.
2006/01/21 11:10 2006/01/21 11:10

일 이 분쯤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영화는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답게 어두운 작품이라는 이야기(이 경우에 한해서, 누구답게 어떠하다는 말이 내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를 들었었는데, 그 말을 증명하기로 하려는 듯이 영화관은 완전히 깜깜해서 어디가 통로고 어디가 좌석인지, 그래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휴대전화 폴더를 세 번 열어서 위치를 확인했는데, 운 좋게도(걷다가 넘어질 뻔하고 잠시 동서남북을 잃은 등의 일들은 논외로 하고) 처음 열어 찾은 곳이 나열 귀퉁이, 세번째 찾은 곳이 바로 우리 자리였다. 가는 내내 사람들 무릎 위로 쓰러지는 일을 주의하느라 조심해야만 했는데, 눈이 어둠에 익고 화면이 밝아진 뒤로 훑어본 좌석들은 거의 비어 있었다.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라곤 어린 시절 TV 인형극으로 봤을 뿐이라서, 왜 그렇게 많은 올리버 트위스트들이 새로 태어나는지 모른다. 방금 IMDb에서 검색한 결과로는 티비와 미니 시리즈를 포함해 19편이나 나온다.

다소의 유머와 까칠까칠한 질감을 가진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아동 학대 이야기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 하는 소재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그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린 아이가 그저 흘러다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낄 새도 없을 정도로 호흡이 급하기 때문이다.

필름 포럼에서, 1월 14일 토요일 오후 3시 40분, 나열 44번
2006/01/14 15:40 2006/01/14 15:40

하이퍼텍 나다에서 놓친 영화 다시 보기 식의 행사를 진행하는 모양이다. 최근 킹덤 오브 헤븐, 배트맨 비긴즈 등에서 반짝 반짝 빛나던 리암 니슨이 모처럼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라서 기대하던 중 이런 저런 사정으로 안타깝게 놓쳤던 킨제이 보고서를 드디어 봤다.

우리는 언제나 구태와 편견, 차별과 몰상식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과 투쟁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방향을 잃을 수 있는 나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이퍼텍 나다에서, 1월 7일 토요일 오후 1시 40분, 나다 1층 나열 37번(손석희)

좀 늦게 들어가서 아무 자리에나 앉았는데, 그 자리는 이영애였다. :]
2006/01/07 13:40 2006/01/07 13:40

아마, 사랑? 올 첫 번째 영화는 퍼햅스 러브.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이 있길래 몇 개의 시간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영화 선택에 실패할 경우 대안이 많은 메가박스로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싸움의 기술을 보러 간 것인데, 남은 표는 있었지만 자리가 안 좋아서 그냥 이 영화로 바꿨다.

예고편에서 보기로, 물랑 루즈나 시카고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였으나, 감독의 말처럼 역시 멜로이고 노래는 그보단 오페라의 유령에 가깝다. 노래와 춤은 대개 평작이지만 그 중에서 장학우의 노래가 꽤 훌륭하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이고 캐릭터도 공감이 가나 영화의 야심에 비해서는 아쉬운 감도 없지 않다. 뮤지컬 씬의 디테일이 기대보다 떨어진다. 뮤지컬 씬은 극 중의 극에서만 나오고, 그 안에서 거의 같은 이야기를 병행하는데, 이것이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플롯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영화가 좀 더 길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알 수 없지.

우리나라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신경 쓸 터인 지진희는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인데, 극중에선 독특한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감독이라면 외국 배우를 한 번쯤 이렇게 쓰고 싶은 기분이 들 듯도 싶다. 그가 나오는 장면마다 웃는 남자가 있었는데, 불쾌했고, 그럴 이유가 없다.

메가박스에서, 1월 5일 목요일 오후 8시 15분, 6관 N열 18번
2006/01/05 20:15 2006/01/05 20:15

내가 기억하는 장진영은 언제나 소름의 그녀였다. 담배 피우는 게 멋있는 여자. 그러나 그녀는 언제인가부터 싱글즈의 그녀가 되어있었다.

모든 인물에게는 언제나 역사가 있고 그리고 그 인물의 현재가 있다. 큰 사람 박경원, 여자 박경원을 나는 드문드문 볼 수 있었지만, 그녀의 역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비오는 아래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는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했다.

날아야 하는 사람은 날아야 한다, 어떤 역경이 너의 앞에 있어도, 라고 당신들은 언제나 말하지 않았나요.

CGV 야탑에서, 12월 31일 토요일 오전 11시 40분, 7관 D열 10번
2005/12/31 11:40 2005/12/31 11:40

손예진♡

사실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이라면 알겠지만, 영화 초반의 생뚱맞은 와이어 액션은 한참 걱정거리였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물론 이것은 좀 나쁘다는 얘기다.

메가박스에서, 12월 23일 금요일 오후 8시 15분, 8관 C열 16번
2005/12/23 20:15 2005/12/23 20:15

나는 장동건을 좋아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좋은 배우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야 할거다. 그가 좋은 이유는 그가 잘 생기고 인기가 있으면서도,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내내 좇으며, 그것을 아직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잘해야지, 분발해야지, 하면서 그가 나오는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 성숙하고 견고해질 수록 제품의 성패는 기획에 달려있기 마련이다. 다른 분야의 완성도가 상향 평준됨에 따라 제품의 품질이 기획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이것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제품의 성패와는 관계 없이 특정한 분야에서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실패한 생물학 연구도 인포매틱스 분야에서는 기존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개가를 올렸을 수도 있다. 만약에 게임 산업이 성숙해 있다면 실패한 게임의 백서도 프로그램 분야에서는 업계의 바이블이 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획 영화의 성패는 돈을 주고 어떤 것을 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성숙되어 있지 않은 시장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원하는 것을 살 수 없을 수가 있다. 일단 완성도가 기본이다. 태풍은 장동건만큼 아직 애매한 위치에 있는, 우리 영화계의 인프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성패나 기획과는 별개로 아직 많은 부분이 모자르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이 정도면 잘 만든 거 아닌가?

요즘 감정이입 하는데 도가 튼건지 영화 중간부터 내내 울었다.

CGV 야탑에서, 12월 22일 목요일 오전 9시 30분 조조, 2관 H열 5번
2005/12/22 09:30 2005/12/22 09:30

내가 놓친 분량은 영화의 1/3이었지만, 내가 놓친 영화는 절반이 넘었다. 노련하게 잘 만든 코미디 영화다.
그들에게 기회가 아직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 여전히 삽질로 점철될 것일까.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인연의 마지막 갈림길이란, 죽기 전엔 없는 것인지라.

여자들은 짐작만 가지고 움직이지 않아요, 랬지만, 사실은 '어떤 사람들은'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제목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

CGV 오리에서, 12월 5일 월요일 오후 9시, 1관 J열 13번

그런데, 균형이 안 맞는다. 다시 한 번 앞부분만 보고 나와야 되나.
2005/12/05 21:00 2005/12/05 21:00